주말농군

이랬던 그 곳이...

pks0413 2009. 8. 17. 14:56

 매서운 찬바람 쌩쌩부는 지난 겨울에 눈길을 헤치고 자동차 바퀴로 눈길을 가르면서 이 곳에 인연을 맺었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곳은 잡초만 무성하고 수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황무지가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앞이 막막했습니다.

주변환경과 입지조건만 고려하고 경작은 생각치도 못하고 겁도 없이 무식하게 맨땅에 헤딩했습니다.

 가운데 흙은 누가 퍼 갔는지 움푹 파인 낭떠러지에 너구리가 똥을 싸 놓고 제게 야유를 보내는 듯했습니다.

 먼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는 것이 우선이였습니다.

마치 처녀 가슴에 깃발을 꽂듯이 조심스럽게 흙을 다져가면서 차를 몰았습니다.

 시야가 트이도록 주변의 잡목을 걷어냈습니다.

답답하던 주변이 이제 좀 시원스럽게 느껴지지더군요!

 수 년 동안 방치된 잡목을 걷어내기 위해 예초기로 묵은 잡초를 정리하였습니다.

 어머님은 돌을 줍고,

 아버님은 비닐을 걷어 내 주셨습니다.

ㅋㅋㅋ 일당 쳐 드리느라 한 달 용돈이 바닥났습니다.

 힘에 부치지만 주말이면 이 곳에서 노가다의 연속이였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이 고생을 해야하는지 가끔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곱던 손에 물집이 생기고 나무에 찔려 상처 투성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허구한 날 사진도 제대로 찍을 줄 모르면서 사진기나 쳐 들고 팔자 좋게 다닌 것처럼 보였던

주변 분들이 놀라시더군요!

 주말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가다를 한 결과 서서히 경작지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활짝 핀 들매화가 잠시나마 빙긋 미소를 지을 여유를 찾게 했습니다.

 가장 먼저 심은 감자에 싹이 나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고 감격스럽던지

가슴벅찬 감동에 젖어 오르가즘을 느낄 정도였죠!

비록 어릴적 부모님이 시키는 농삿일 마지 못해 억지로 해 본 적은 있지만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수 기른 농작물이였습니다.

 힘차게 싹을 내미는 감자에 힘입어 내친 김에 남은 곳에도 골을 짓고 씨앗을 파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사진 곳엔 도라지와 더덕을, 가장자리엔 옥수수와 아주까리를, 소나무 아래는 야생화를 심고,

밭에서 일할 때 노래를 불러 줄 산새들을 위해 새 집도 달아 줄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한 주도 빠짐없이 주말마다 가꾼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믿어지지 않은 결과입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이 곳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항무지가 이렇게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왕복 기름값과 부모님 용돈 등 인건비를 따지면 도저히 경제논리로 접근할 수 없지만

성취감과 그 기쁨은 돈으로 환산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손해 나는 고생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보세요! 저 쪽에 늘어진 소나무 가지가 주말마다 저를 부르며 손짓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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