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 이야기
때는 갑신년 삼월 스무 하룻날 허겁지겁 시커먼 김으로 감싼 두무마리 주먹밥을 망태기에 넣고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소사나무를 구출하기 위해 마차에 화통을 걸고 산넘어 강건너 소사나무 자생지의 신작로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코끼리 처럼 생긴 희한한 쇠꼽덩어리(포크레인)와 코뿔소 처럼 생긴 골쎄리는 쇠꼽막대기(굴삭기)가 암반을 사정없이 쑤셔대면서 산더미처럼 큰 돌덩어리를 박살을 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잘려나간 수목들은 허리와 뿌리가 통째로 나딍굴면서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현장을 보면서 내 살이 찢어 드는 아픔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전장터를 방불케 하였다.일어나~ 어서 가야해~-("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인용)
그 현장은 석회석 암반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난공사라서 하루 종일 뺑이치면서 굴삭기가 뚫고 나가봤자 기껏해야 1미터 남짓 "전진! 앞으로~"할 뿐이였다.
최첨단(?) 현대문명의 중장비조차도 대자연의 위력앞에서는 맥을 못추는지 이 굴삭기 조차도 손을 대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바위섬처럼 생긴 50미터 절벽으로 된 섬은 그냥 남겨두었다.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할 계획이란다.
왜 하필이면 그 절벽 꼭대기에 쥑여주는 소사나무가 올라 가 있을까?
밑에서 위를 쳐다보니 가물가물하다. 다만 천하를 안고 있는 듯한 형상의 암컷 학이 날아가는 듯한 좌우 절대균형의 취류형 소사나무 한그루가 나를 유혹하고 있었으니...
흐미~ 저 허연 허벅지 살좀 봐? 수피가 하얀 백소사가 아니던가?(백소사라는 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수피가 흰 소사를 백소사라 부를 뿐입니다.)
마치 처녀의 치마속 허벅지 살이 보이는 것처럼 광채를 빛내면서 이 유부남을 유혹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허벅지 뿐인가? 불룩 튀어나온 히프(밑둥)는 어찌나 요염하게 보이던지...
내 죽음을 불사하고 저 가슴에 깃발을 꽂으리라~
그저 위로 쳐다보면서 입만 떡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고 한참을 바라 볼뿐이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오~ 재발 나 좀 어떻게 해봐! 이 감정 주체를 못하오~
한시 바삐 구출해야 하지 않으면 다이너마이트 폭파로 산산조각이 날 비운의 명을 재촉해야 할 판이다.
공사현장에서 차량을 통제하는 할아버지께 물어 봤다.
"할아버지~ 저 꼭대기에 있는 나무가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할아버지 왈 "나는 어렸을적부터 여기 살았는데, 내 어릴적에도 저 나무가 저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 " 허걱~ 그 할아버지 나이가 올해 79세라니깐 최소한 200년은 넘었다는 얘기다.
바위위에 살고 있는 나무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이상 굵어지지를 않는 법이다.
아마 인간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처녀림이나 다름이 없는 곳에 내가 최초로 인간의 발을 내 딛는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암스트롱인지 수스트롱인지 하는 양반이 달나라에 발을 뻗는 그 감격스러운 심장이 고동치는 느낌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감히 미치거나 히로뽕 맞지 않고는 그 위로 올라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기암괴석이다.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오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세계적인 미국의 마약 코크에 숫바싸(여자분은 암바사를 드세요!)를 타서 한입 목을 추기니 정신이 몽롱 해 지면서 50미터 절벽이 이제는 10미터 절벽으로 낮아 졌다.
지금껏 암벽등반 한번 해 보지 못하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이 된 것이다.
도대체 로프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몰라서 그저 몸에 칭칭 감고 한발 한발 암반위로 힘겹게 몸을 올렸다.
허걱~! 밑을 보지 말라! 천길 낭떠러지! 실족하면 전치 몇 주는 통하지도 않는다. 곧바로 죽음이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올라 왔는가 싶어 아래를 내려보니 저 밑에 있는 자동차가 한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기증이 난다. 돌뿌리에 간신히 걸치고 있는 내 다리는 이미 벌벌 떨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바지까지 축축하게 젖었다.(아마 오줌이 아니라 땀일 것입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가족들의 얼굴들이 하나둘 떠 오른다.
"아들아~ 이 애비가 뒈지거든 양지바른 소사나무 밑에 묻어다오~ 할렐루야~ 아멘, 나무관세음 보살,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미 저녁노을은 져서 날은 점점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다시한번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공을 다진후에 로프를 잡고 암반에 몸을 바짝 기대어 위를 쳐다보니 아직도 가물가물하다.
아래를 보면 한참을 올라 온 것 같은데, 위를 보면 올라갈 길이 아직 멀었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조그마한 새소리, 바람소리에 조차 놀라 가슴이 덜컹내려 앉을 정도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 밑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요즘 많이 온 봄비에 칠흑같은 어둠을 드리우면서 음침하게 흐르면서 금방이라도 괴물이 나올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시커먼 물속에서 10여미터는 족히 넘을 듯한 시커먼 괴물이 물살을 가르면서 등을 보이더니 머리를 쳐들었다.
흐미~ 저게 뭐람? 아주 어렸을적 가물가물한 기억속에 목격한 이후 아랫도리 털나고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였다.
저 놈이 이무기가 아닌가? 난 이제 죽었다.
신성스러운 자연의 영역을 탐내는 나를 단죄하러 온 것 같았다.
이젠 더 이상 쌀 오줌도 없다.
소사고 나발이고 팽기치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내려오지를 못했다.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이 절벽을 올라가서 멀지만 반대편 경사가 조금 완만한 지역으로 내려 오는 길 밖에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여미터나 되는 괴물이 갑자기 세동아리로 갈라져 기가 막히고 희한한 장면을 연출 하는것이 아닌가?
도대체 저게 무슨 신의 조화란 말인가?
수달이였다. 수달 세마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살을 가르면서 장난을 치다가 다시 떨어져서 물고기를 잡고 숨을 쉬기 위해서 물위로 올라오는 장면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몸에 있는 수분은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체외로 발산시킨후에 정상에 도착하였다.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암반위에서 갖은 풍상을 겪으면서 자라온 나무라서 그런지 울퉁불퉁한 밑둥에 덕지덕지한 가지가 이 나무의 연륜을 짐작하게 했고, 상하좌우로 뻗어나간 가지는 모두 9간이였으며 그 중에 좌측으로 뻗어나간 2간이 날개짓을 하다가 다시 뻗어나갈 듯 한 형상에 앞뒤가 따로 없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기가막힌 모양새를 이루었다.
거기에 밑둥을 비롯한 가지 중간에는 썩어가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으며 이미 썩은 부분은 완벽하게 아물어 야취를 더욱 느끼게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수피는 희다 못해 은색이 날 정도였고 가지에는 얼룩덜룩한 무늬까지 어울어져 있으니~
한참을 멍하니 이 놈을 감상했다.
이제 이 놈을 채취할 일만 남았다.
숨고르기를 하면서 한참을 쳐다 보며 감상에 젖어 갖은 생각들이 떠 올랐다.
험한 세풍을 맞으면서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세 모진 세월을 함께 했을 수 많은 사연을 담고 있었을 나무였다.
이 나무는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면서 말없이 이 산하를 지키면서 아래로 지나가는 각양각색을 탐욕스러운 인간들을 보면서 때로는 조롱과 비웃음을 지었으리라.
산꼭대기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세차고 거세었는지 더 이상 가지는 뻗어 나가지를 못했고, 바위위에 자리를 잡아서 제대로 된 영양분을 빨아 들이지 못해서 비틀어지고 휘어진 가지는 모진 풍파를 겪은 노병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디 그 뿐인가? 뿌리는 더 이상 아래로 뻗지 못하여 바위틈에 겨우 걸치고 있었으니~
그냥 이대로 자연의 품에 놓아주고 싶지만 지금 내가 이 나무를 구출해내지 못하면 내일이면 이 나무는 포크레인에 짓밟혀 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이 아니던가?
채취는 생각보다 쉬웠다. 바위틈으로 뻗어나간 굵은 뿌리 몇개를 톱으로 잘라냈더니 금새 쉽게 흔들거리면서 중심을 잃었다.
자신이 움켜쥐고 있던 낙엽과 몇줌 안되는 흙속에 무수히 많은 잔뿌리가 목이 마른채 말라 있었으니 물만 듬쁙 주면서 분에 심으면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이 무럭무럭 싹을 틔우면서 자라날 것이 틀림이 없었다.
겨우 어찌어찌하여 집으로 갖고 왔다.
이제 오늘 나와 첫날밤을 치루어야 한다.
뭐든 순서가 있는 법!
어찌 목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칫솔과 브러쉬를 이용하여 이 나무의 몸통과 가지를 팍팍 문질러 가면서 때빼고 광을 내고보니 은빛 하얀 속살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참으로 기가막히게 생긴 놈이였다.
그날 밤 나는 이놈과 초야를 치루면서 어찌나 설레었던지 잠을 못이루었다.